아마미오시마는 가고시마 본토와 오키나와 본섬의 딱 중간 정도에 자리하고 있어 예부터 다른 문화권인 양쪽의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몇 백 년 전부터 섬 이외 지역의 생물들이 왕래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곳에만 살고 있는 희귀한 생물들도 많이 볼 수 있어, 자연환경 또한 독특함 그 자체라고 한다.
이 매력 만점의 섬 아마미오시마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2박3일간 알차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이곳에 가는 교통편은 배와 비행기가 있으며, 비행기는 도쿄와 가고시마에서 출발하고, 배는 가고시마에서 출발하는데 천천히 가는 페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우리는 비행기를 이용했다.
아마미에 도착하자 마자 만난 어떤 분이 아마미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요소 몇 가지를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하늘, 숲, 바다 그리고 시마비토라 불리는 섬 사람들이고 이 매력을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빛’이라고 하였다. 아마미의 위도는 북위28.3도인데 이러한 조건에서 태어나는 특별한 빛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개성 있는 주민들에 더해져 아마미만의 아름다운 매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아마미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빛- 아야마루 미사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방문한 우리의 첫 코스는 공교롭게도 아름다운 바다 위에 내리 꽂는 햇살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아야마루 미사키(あやまる岬)’ 였다. 섬의 북단에 위치한 이곳은, 태평양을 향해 있는 곶의 높은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꾸며져 있었는데, 탁 트인 바다와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수면 위를 비추는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거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곳에는 언덕 위의 그림 같은 집과도 같은 예쁜 카페에서 출출함을 달랠만한 간식거리와 다양한 음료를 팔고 있었는데 이 또한 메뉴가 보통 카페와는 달랐다. 아마미만의 식재료와 식문화를 살린 메뉴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있었다. 호기심과 식욕이 남다른 내가 이런 가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시오부타(塩豚、소금돼지) 버거’라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주문해 한입 베어 물자 짭짤하고 탱탱한 돼지고기가 입안 가득 만족감을 안겨준다. 오 이거 별미로군! 아마미에서는 예부터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여 먹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시오부타’라고 한다. 이날 맛 본 햄버거 외에도 여행 내내 여기저기서 이 시오부타를 이용한 메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어떤 해변 마을에서 얻는 최고의 힐링- 구니나오 마을
여행 출발 전 추천 코스에, ‘구니나오 (国直)마을 산책’ 이라는 일정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마을 산책은 우리 동네에서도 할 수 있는 건데… 웅장한 자연이나 역사가 있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 것 같고, 도대체 무얼 하러 가는 것인지,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 까지 내 머릿속에는 의문만 가득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니 바로 옆에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해변가가 있고 저쪽에서부터 맘씨 좋아 보이는 한 아저씨가 행복하고 느긋한 표정의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성큼성큼 걸어온다. 마을 산책을 도와주시는 지역 가이드 분과 이 동네 제일 유명한 수퍼스타 멍멍이 ‘주’였다. 아저씨와 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곳이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인지 딱 느낌이 왔다.
이 곳 구니나오 마을은 인구 120명 남짓인, 어찌 보면 아무것도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가 마을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이 동네 구석 구석을 천천히 걷다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깔끔하게 정돈된 마을 풍경이 내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동네 곳곳에 쭉쭉 뻗어있는 후쿠기라는 나무로 조성된 가로수 길의 푸르름도 눈과 마음에 힐링을 준다.
그렇게 골목골목을 걷다가 해변으로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다. 휴지 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하고 널찍한 모래사장에 딱 듣기 좋을 만큼의 파도소리, 천천히 조용히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태양. 이 모든 것이 완벽한 그림 같았다. 이때 하루 일과를 마친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씩 한 손에 맥주를 들고 해변으로 모여든다.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면서 오손손도손 담소도 나누고,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피로를 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비치글래스와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액자 만들기
이러한 자연이 주는 힐링, 이와 함께 이 마을의 큰 매력은 바로 사람이다. 도착했을 때부터 동네 구석 구석과 해변가가 신기할 정도로 너무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네 사람들이 매일 바닷가에 나와 쓰레기를 줍고 동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가꾸고 있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도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이 마을만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또한 이곳에서 꼭 한번 해 볼만한 체험이 있는데, 그건 비치 글래스를 이용한 액자 만들기다. 비치글래스란 오랜시간 바닷가에 머물며 마모되어 저마다 다른 모양을 갖게 된 작은 유리조각들을 말하는데, ‘데루보즈(てるぼーず)’라는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매일 바닷가에 나가 쓰레기를 주우면서 비치 글래스와 조개껍데기도 함께 주워오신다고 한다. 이 민박집에서 이것을 이용한 액자를 만들어 볼 수 있는데 우리도 여행의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비치글래스 액자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액자를 완성한 후, 마음 같아서는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바로 또 이동을 해야 했다. 스노쿨링 등의 해양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올 때는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이 마을에만 며칠 머물며 이런 저런 체험도 해 보고, 바닷가에 앉아 맥주도 마시며 동네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보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미만의 향토음식을 맛보며 섬노래에 취해보는 시간-나쓰카샤야
아마미는 음식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 평소에 가고시마에서 먹는 요리와는 다른 독특한 향토요리들이 많이 있다. 이런 아마미의 향토요리를 맛보기 위해 우리는 ‘나쓰카샤야’라는 식당으로 갔다. 아마미에서는 어머니를 ‘암마(あんま)’라고 한다고 하는데, ‘엄마’랑 발음이 비슷한 것이 왠지 정감이 간다. 나쓰카샤야에서는 이 ‘암마’가 정성스럽게 만든 전통 요리를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주는데, 요리 외에도 이 가게의 매력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시마우타(シマ唄、섬노래)’ 라고 불리는 아마미 지방의 민요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미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시마우타’는 아마미가 자랑하는 전통문화의 하나이자,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학원에 배우러 다닐 만큼 동경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기분 좋게 배가 불렀을 때쯤 민요를 부르는 가수가 등장해 바로 눈앞에서 시마우타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우리 한국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독특한 발성에, 가사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라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차분한 곡들로 시작을 하더니, 갈수록 점점 흥이 더해져 어느 샌가 우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종업원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어깨 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시마우타’ 에 취해 ‘시마비토’와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아마미에서만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만나러-긴사쿠바루(金作原) 원생림
이제 아마미의 하늘, 바다, 시마비토(사람)를 체험했으니 남은 건 숲. 무엇보다 특별하다는 아마미의 숲과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긴사쿠바루(金作原) 원생림 투어에 참가했다. 전문 가이드가 숙소까지 데리러 오면 승합차에 올라타 숲으로 향한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이런 길을 운전하는 가이드 분이 존경스러울 정도의 엄청난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될 수 있는 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려고 도로 포장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외에도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이곳의 사람들은 아주 세심하고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원생림에 들어갈 때는 절대 관광객들끼리는 들어갈 수 없고, 자격증을 가진 가이드와 동행하여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자연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면 바로 가이드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는 경고문이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미에는 오직 아마미에만 살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구로우사기(クロウサギ)’, 직역하면 검은 토끼인데 이는 토끼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토끼 중 하나이며, 먼 옛날 아마미오시마가 유라시아 대륙과 붙어있을 때 넓은 지역에 걸쳐 생식하다가 아마미가 섬이 되어 떨어져 나간 후 대륙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마미에는 오랜 시간을 지나 현재까지 살아있는 매우 희귀한 동물이라고 한다.
검은토끼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에 투어에 간 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나는 생전 처음 보는 신비로우면서도 웅장한 많은 나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약간은 거칠기도 한 자연 그대로의 숲이 가진 웅장함과 푸르름에 한번 감동하고,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섬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에 다시 한번 감동했던 시간이었다.
오직 아마미에서만 해볼 수 있는 진흙 염색 체험-가나이 공예
여행을 가기 전부터 ‘아마미오시마’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오시마쓰무기(大島紬)’이다. 이는 아마미의 가장 유명한 전통 공예품으로, 견사를 수십 번에 걸쳐 진흙으로 염색하여 손으로 짠 직물을 말한다. 그리고 이 진흙 염색은 오직 아마미오시마에만 있는 전통 방식이라고 한다. 오시마쓰무기로 만든 공예품을 볼 때마다 독특한 색감과 디자인이 참 세련되고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진흙으로 염색한 거라니!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참 신기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가나이 공예(金井工芸)’에서 진흙염색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오시마쓰무기는 몇 시간 만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염색 체험에서는 면으로 된 티셔츠나 스카프, 가방 등을 원하는 색으로 염색해 볼 수 있다. 먼저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정한 다음 공방 안에서 샤린바이(シャリンバイ)라는 장미과의 식물을 이용해 선 염색을 한다. 이것을 밖에 있는 진흙탕으로 가져가 끊임 없이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면 진흙 속에 있는 철 등의 성분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점점 원하는 색깔이 나오기 시작한다. 염색 체험에서는 이 과정을 한번 또는 두 번 거쳐 원하는 색의 결과물을 얻는 것인데, 전통 오시마쓰무기는 이 과정을 80번 이상 반복하여 만든다고 한다. 한번만 해도 힘이 들어 주저앉아 쉬고 싶어지는데 이걸 80번이나 한다니… 이곳에 오기 전 까지 오시마쓰무기가 너무 비싸다고 했던 것을 진심으로 반성하기로 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티셔츠와 가방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기념품이 되었다.
하늘, 바다, 숲, 그리고 빛.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 내 마음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전통과 자연을 사랑하고 지켜가는 섬사람들은 나에게 많은 자극과 함께 마음에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마미오시마라는 섬이 엄청난 매력을 갖고 있는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충분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보고 있는 지금, 빨리 다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아마도 아마미의 매력에 푹 빠졌나 보다.